마지막 조언

EP.4 돌아갈 길이 닫히다

객잔에 남은 마지막 등불 아래에서 명부의 빈칸이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진연준은 탁자 끝에 서서 그 종이를 바라보았다. 종이는 낡은 목판 위에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먹이 번진 이름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위쪽 절반은 이미 메워진 지 오래였다. 아래쪽 몇 줄도 하나씩 채워져 가고 있었다. 남은 빈칸은 하나였다. 진연준의 눈이 그 빈칸 위에서 멈추었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불었다. 서북대로 초입의 밤바람이었다. 이 계절에 이 방향에서 오는 바람은 늘 차가웠지만 오늘 밤은 유독 날이 섰다. 객잔 문틈 사이로 그 바람이 가늘게 스며들었고, 등롱 하나가 흔들렸다. 그림자들이 출렁이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객잔 안은 조용하지 않았다. 북쪽에서 내려온 장사꾼들이 구석 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털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두꺼운 가죽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객잔이 넓지 않아 내용은 들렸다. "천산 쪽은 이번 달 초에 이미 눈이 왔다더군요." 털모자 쪽이 말했다. "운설령 아래 마을에서 올라온 사람한테 들었는데, 예년보다 보름은 이른 거라고." "식량값이 올랐습니까?" 가죽 외투 쪽이 물었다. "올랐지요. 북쪽 길목이 막히기 시작하면 소금값부터 오르거든요. 소금이 오르면 다음은 곡식이고, 곡식이 오르면 그다음은 말사료입니다. 순서가 정해져 있어요." 두 사람은 그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길과 눈과 식량에 관한 것이었다. 구체적인 숫자들이 오갔다. 몇 근, 몇 냥, 며칠, 몇 리. 진연준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객잔 안의 다른 무인들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칼과 명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맹주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현천마교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느 탁자에서는 누가 먼저 선봉에 설 것인지를 놓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어느 탁자에서는 천산을 넘어 마교의 본거지까지 밀어붙이자는 말이 나왔다. 그 말에 누군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호응했다. 묵진로는 진연준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눈은 반쯤 내리깔려 있었다. 그 눈이 장사꾼들 쪽을 향해 있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들었나." 묵진로가 낮게 말했다. 진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산 쪽에 초설이 왔다는 말." "들었습니다." 묵진로는 찻잔을 한 번 기울였다가 내려놓았다. "보름이 이르다는 건 큰 차이야. 고개를 넘는 시간이 보름이 이르면 보급선도 보름이 이르게 끊기거든. 사람이 보름을 더 버텨야 한다는 말이야. 굶으면서." 진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저 사람들한테 해 줄까?" 묵진로가 턱으로 다른 탁자들을 가리켰다. "천산 초설이 보름 일렀다고. 그래서 식량이 이만큼 더 필요하다고. 길목이 이 시기에 막히면 퇴로가 이렇게 된다고." 진연준은 그쪽을 보았다. 탁자들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목소리들이 오갔다. 누군가 웃고 있었다. 누군가 칼집을 두드리고 있었다. "듣지 않겠지요." 진연준이 말했다. "그래." 묵진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지 않아. 그게 문제야." 객잔 뒤쪽으로 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가면 보급선이 지나갔다. 낮에는 수레들이 오갔지만 밤에는 텅 비어 있었다. 진연준은 그 길을 따라 잠깐 걸었다. 찬 공기를 마시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객잔 안의 열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인지 자신도 몰랐다. "연준아." 진연준은 걸음을 멈추었다. 서문혁이 옆에 섰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보급선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멀리 어둠 속에서 수레 한 대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짐은 실려 있지 않았다. 빈 수레였다. "저 수레." 진연준이 말했다. "비어 있습니다." "밤이니까 비어 있지. 낮에는 채울 거야." "출정이 사흘 뒤입니다." 진연준이 말했다. "사흘 뒤에 출발하는데 저 수레가 지금 비어 있으면 언제 채웁니까." "채울 거야." 서문혁이 다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천의맹에서 보급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할 거야." "사형." 진연준이 돌아섰다. "저는 그 사람들을 믿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야." "제갈원 선생이 보여 준 장부를 봤습니다. 출정 인원에 비해 곡식이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그게 단순한 착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연준아." 서문혁이 말했다. "지금 우리가 출정을 앞두고 있어. 맹주가 돌아가셨어. 천의맹이 움직이고 있고, 사람들이 모이고 있어. 이 흐름에서 보급 수레 하나가 비어 있다는 걸 붙잡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됩니까." "아무도 안 따라와." 서문혁이 말했다. "그냥 겁 많은 사람 소리 듣는 거야. 사기를 꺾는 사람 소리 듣는 거야. 그게 더 위험해." 진연준은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빈 수레를 다시 보았다. "사형." 진연준이 말했다. "묵진로 어르신이 하신 말씀 들으셨습니까. 이십 년 전 북쪽 길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들었어." "그 사람들은 싸우다 죽은 게 아니었습니다." "길에서 죽었습니다. 굶어서 죽었습니다. 추워서 죽었습니다. 저 수레가 비어 있는 게 그냥 보급 담당자의 착오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건데." 서문혁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진연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야영지 쪽에서 불빛이 보였다. 객잔 뒤편에 천막 몇 개가 쳐져 있었고, 거기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진연준은 그쪽으로 걸어갔다. 묵진로가 그 중 하나의 천막 앞에 앉아 있었다. 작은 화로가 그 앞에 놓여 있었고, 묵진로는 그 불빛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연준이 옆에 앉았다. 서문혁도 따라와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한동안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로의 불이 타닥거렸다. "올라갈 거야?" 묵진로가 물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정하지 않은 것 같았다. 묵진로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냥 불을 바라보았다. "연준이 너는?" 진연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 불빛이 흔들렸다. "모르겠습니다." 진연준이 말했다. "아직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묵진로가 말했다. "모르는 게 정직한 거야." "어르신." 서문혁이 말했다.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지금은 모를 때가 아닙니다. 맹주가 돌아가셨습니다. 천의맹이 움직입니다. 명부가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 흐름에서 모르겠다는 말은." "그 흐름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나?" 묵진로가 말했다. "흐름을 따라가면 편해. 그게 맞아. 그런데 그 흐름이 어디로 가는지 한 번쯤은 봐야 하지 않겠나." 묵진로가 화로에서 눈을 들어 서문혁을 보았다. "나도 젊었을 때 그 흐름을 따라갔어. 천산 쪽으로. 그리고 거기서 사람들이 죽는 걸 봤어. 칼에 죽은 게 아니야. 길에서 죽었어. 길을 잃어서 죽었어. 먹을 것이 없어서 죽었어." "그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서문혁이 말했다. "뭐가 다른데?" "천의맹이 훨씬 커졌습니다. 사람도 많고, 자원도 많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먹을 것도 많이 필요해." 묵진로가 말했다. "자원이 많으면 그 자원을 관리하는 사람도 많이 필요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두 제대로 일을 하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진연준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묵진로의 절박함이 보였다. 그것은 냉소가 아니었다. 두려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미 한 번 겪어 본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서문혁의 뜨거운 결기도 보였다. 그것도 진짜였다. 맹주의 죽음 앞에서 타오르는 것이었다. 의리였고, 분노였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진심이었다. 그리고 진연준은 그 두 진심 사이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쪽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어느 쪽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두 쪽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연준아." 묵진로가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올라갈 거라면 한 가지만 기억해. 살아 돌아오는 길부터 기억해라. 올라가는 길은 누구나 알아. 내려오는 길을 아는 사람이 살아남는 거야." 진연준은 그 말을 들었다. 그 말이 가슴 어딘가에 박혔다. 묵진로와 진연준만 화로 앞에 남았다. "어르신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진연준이 물었다. "나?" 묵진로가 잠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간다. 막을 수 없으면 같이 가는 거야. 그리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려서 데리고 내려오는 거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진연준은 화로를 바라보았다. 불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새벽이 되기 전에 진연준은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등롱은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 불빛 아래에서 명부가 펼쳐져 있었다. 빈칸이 하나였다. 진연준은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붓이 놓여 있었다. 먹물이 담긴 작은 그릇이 그 옆에 있었다. 진연준은 붓을 집어 들었다. 손이 잠깐 멈추었다. 그 멈춤 속에서 진연준은 묵진로의 말을 다시 들었다. 살아 돌아오는 길부터 기억해라. 그리고 서문혁의 말도 들었다. 같은 문파야. 그리고 빈 수레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장사꾼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천산 쪽에 초설이 왔다. 보름이 이르다. 붓이 종이 위로 내려왔다. 진연준은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먹이 번졌다. 빈칸이 채워졌다. 명부에 이름이 올라간 순간, 진연준은 더 이상 판단을 유예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의 모든 것이 자신의 몫이 되었다. 패배가 오면 그것도 자신의 몫이었다. 생환의 책임도 자신의 몫이었다. 형제를 버리지 못하는 마음과 살아남아 돌아와야 한다는 책임을 함께 받아들인 것이었다. 묵진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눈이 진연준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진연준은 붓을 내려놓았다. 바깥에서 바람이 불었다. 객잔의 마지막 등롱이 흔들렸다. 그림자가 한 번 크게 출렁이다가 가라앉았다. 동이 트기 전의 가장 어두운 시각이었다. 날이 밝으면 북벌도룡대 선봉 명단이 굳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집결지에서 첫 편제가 시작될 것이었다. 진연준은 그 사실을 알면서 탁자 앞에 서 있었다. 명부 위에 자신의 이름이 먹물로 박혀 있었다. 그것은 이제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