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나 있었다.
채서윤은 그 사이에 회사를 두 번 더 나갔고, 두 번 모두 언덕 아래 버스 정류장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다 집으로 돌아갔다. 언덕을 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날은 언덕 중턱까지 올라가서 고양이 카페의 간판 불빛이 보이는 데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렸다.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 없었다. 무서운 것도 아니었고, 바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직은 아니라는 감각이 발끝에서 먼저 반응했다.
그 감각이 꼭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리진에서는 그 사이에도 일이 있었다. 기각된 기획안과 관련해서 팀장이 다시 한번 서윤을 불러 세웠고, 이번에는 말투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고, 위로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 방향은 없는 것으로 하자는 식의 정리였다. 서윤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자기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캔 커피를 하나 샀다. 계산대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하나 더 집었다. 왜 두 개를 샀는지는 편의점 문을 나서면서야 알아챘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손이 먼저 움직인 것뿐이었다.
그날 밤 서윤은 혼자 캔 커피를 두 개 다 마셨다.
사흘째 되는 날, 그녀는 퇴근 후 다시 언덕을 올랐다.
늦가을 저녁 특유의 공기가 옷깃 사이로 파고들었다. 낙엽은 이미 대부분 떨어져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젖은 보도블록 위에 번지고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공기가 촉촉했다. 처음 재회했던 그날 밤과 비슷한 냄새가 났다. 서윤은 그 냄새를 맡으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고양이 카페는 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서 희미하게 음악이 흘러나왔다. 서윤이 들어서자 카페 사장님이 카운터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인사만 했다. 서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앉으면서 창가 쪽을 먼저 봤다. 그날 밤 시혁과 앉았던 자리. 지금은 비어 있었다.
따뜻한 것을 시켰다. 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따뜻한 것.
시혁이 들어온 것은 서윤이 두 번째 모금을 마실 때쯤이었다.
그는 서윤을 보자마자 멈추지 않았다. 그냥 들어오다가 서윤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잠깐 속도가 줄었다. 그러고는 카운터 쪽으로 가서 뭔가를 주문하고, 돌아서서 서윤 쪽 테이블로 왔다. 묻지도 않고 맞은편에 앉았다.
"며칠 됐네." 시혁이 말했다.
"응." 서윤이 대답했다.
그게 전부였다. 두 사람 모두 그 간격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아직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서윤은 그 구분이 지금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혁이 주문한 것이 나왔다. 아메리카노였다. 그는 잔을 손에 쥐고 창밖을 봤다. 고양이 뉨이 지붕 위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회사 어때." 시혁이 창밖을 보면서 물었다.
"잘렸어. 기획안이."
"알 것 같은 소리네."
서윤은 그 말이 위로인지 확인인지 잠깐 생각했다가, 둘 다라고 결론 냈다. 그게 시혁의 방식이었다. 예쁜 말로 포장하지 않고, 그렇다고 차갑게 자르지도 않는 방식.
"너는 요즘 작업 어때." 서윤이 물었다.
시혁이 잠깐 침묵했다. 아메리카노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모르겠어."
"모른다는 게 안 된다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모른다는 거야."
"진짜 모른다는 거."
서윤은 그 대답이 오히려 솔직하다고 느꼈다. 잘 된다거나 잘 안 된다거나 하는 말보다. 진짜 모른다는 말이 지금 그의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카페 안에는 서윤과 시혁 말고도 손님이 두어 명 더 있었지만, 그들의 소리는 멀게 느껴졌다. 음악이 바뀌었다. 서윤은 그 음악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시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도서관 기억해?"
서윤은 잠깐 멈췄다.
"어느 도서관."
"3학년 때. 기말 직전에 거기서 작업하던 거."
서윤은 그 기억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더듬었다. 도서관. 3학년 기말. 낡은 종이 냄새. 창문 쪽 자리. 시혁이 시향지를 들고 뭔가를 적고 있던 모습. 서윤이 그 옆에서 기획 메모를 쓰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것은 우연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흐릿했다.
"기억해." 서윤이 말했다.
"거기 냄새가 특이했잖아."
"낡은 책 냄새."
"그것만은 아니었어." 시혁이 말했다. "나무 바닥 냄새, 오래된 건물 냄새, 겨울 직전의 공기. 그게 다 섞여 있었어. 거기서만 나는 냄새였어."
서윤은 그 말을 들으면서 그 냄새가 실제로 코끝에 닿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낡은 종이. 나무 바닥. 겨울 직전의 공기. 그것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어떤 냄새. 그 냄새를 맡으면서 시혁의 시향지를 곁눈질로 봤던 기억.
"그때 네가 뭐 적고 있었는지 알아?" 서윤이 물었다.
"향 구조 메모."
"나는 그때 그게 뭔지도 몰랐어."
시혁이 잠깐 서윤을 봤다. "알고 있었잖아."
"뭘."
"그게 뭔지."
서윤은 그 말에 반박하려다가 멈췄다. 사실이었다.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가 하고 있는 것이 무언가를 감각으로 번역하는 작업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래서 말을 걸었고, 그래서 같은 테이블에 계속 앉아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 서윤이 인정했다. "그냥 네가 설명해 주기 전까지는 내 언어로 정리가 안 됐어."
"나도 그랬어." 시혁이 말했다. "네가 그때 기획 메모 쓰는 거 봤는데, 그게 뭔지는 알겠는데 내 언어로는 정리가 안 됐어."
서윤은 그 말을 듣고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기억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다시 열릴 줄은 몰랐다. 며칠 전 재회의 충격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도서관 기억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 이후에." 서윤이 천천히 말했다. "3학년 말에. 그 프로젝트 발표 있었잖아."
시혁의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눈빛이 잠깐 어딘가로 내려갔다가 돌아왔다.
"응."
"나는 그때." 서윤이 말을 이었다. "네가 나한테 화난 이유를 한동안 몰랐어."
침묵이 왔다. 이번 침묵은 아까와 달랐다. 무거운 것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몰랐어?" 시혁이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차갑지는 않았지만 날이 서 있었다.
"응." 서윤이 고개를 들어 시혁을 봤다. "그때 나는 네가 왜 연락을 끊었는지 이해를 못 했어.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한동안 몰랐고."
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어." 서윤이 말을 이었다. "네가 나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 그런데 나는 그 이유를 아직도 다 알지는 못해."
그 말이 공기 중에 떠 있었다. 서윤은 그 말을 꺼내는 것이 무서웠다. 며칠 전부터 이 말을 꺼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막상 꺼내고 나니 상대가 어떻게 받을지 알 수 없었다.
시혁은 아메리카노 잔을 천천히 돌렸다. 잔 아래에 물기가 맺혀 있었다.
"그때 발표날." 시혁이 말했다. "강태준이 내 작업물을 자기 이름으로 올렸어."
서윤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등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강태준. 그 이름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다. 그 이름이 어딘가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아." 서윤이 말했다.
"알아?" 시혁이 처음으로 서윤을 정면으로 봤다.
"나중에 알았어. 그때는 몰랐어."
"그때 넌 그 자리에 있었잖아."
서윤은 그 말이 칼처럼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할 수가 없었다.
"있었어." 서윤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아무것도 안 했어."
시혁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때 내가 뭘 봤는지는 알아." 서윤이 계속 말했다. "발표가 진행되고, 강태준의 이름이 앞에 붙어 있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 나는 그 자리에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어. 근데 말을 못 했어."
"왜."
그 한 마디가 짧고 무거웠다.
서윤은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가 풀었다.
"몰랐어. 그때는. 내가 왜 말을 못 했는지.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왜 그냥 있었는지. 그 이유를 그때는 설명할 수 없었어."
"지금은?"
서윤이 시혁을 봤다. 그의 눈빛이 아까보다 조금 달라져 있었다. 차갑지 않았다. 차갑기보다는 오래 참아 온 것이 조금 풀리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설명은 못 해." 서윤이 말했다. "그냥 그때 내가 겁쟁이였던 것 같아. 그 자리의 공기에 눌려서. 그게 틀렸다는 거 알아."
시혁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잔을 돌리던 손이 멈췄다.
"그래서 네가 나를 같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 서윤이 말했다. "그건 이해해. 그때 내가 같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밖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카페 창문이 미세하게 떨렸다. 서윤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 손끝이 테이블 모서리를 살짝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는지 몰랐다.
"나는." 시혁이 천천히 말했다. "네가 알고도 모른 척했다고 생각했어."
"응."
"그게 아니었어?"
서윤은 그 질문을 받는 것이 이렇게 오래 걸렸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몇 년이 지나서야 이 질문이 나왔다.
"아니었어." 서윤이 말했다. "몰랐어. 그때는 진짜로 몰랐어. 나중에 알았을 때 네가 이미 연락을 끊은 뒤였어."
시혁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서윤도 말을 보태지 않았다. 이 침묵은 메워야 하는 침묵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각자 그 시절의 어떤 장면을 다시 보고 있는 것 같은 침묵이었다.
창밖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뉨인지 다른 고양이인지 알 수 없었다. 서윤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렸다. 지붕 위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 냄새." 시혁이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져 있었다. 무거운 것이 조금 내려간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거 한 번 만들어 보려고 했어."
서윤이 시혁을 봤다.
"언제."
"작업 막혔을 때. 뭔가 잡히는 게 없을 때. 그 냄새가 자꾸 생각났어."
서윤은 그 말이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막혀 있을 때 그 냄새가 생각났다는 것. 도서관의 낡은 종이 냄새, 나무 바닥, 겨울 직전의 공기. 그 냄새가 막힌 것을 뚫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시절의 어떤 감각을 붙들고 있었던 것.
"완성했어?" 서윤이 물었다.
"아니."
"왜."
시혁이 잠깐 창밖을 봤다가 다시 서윤을 봤다.
"혼자서는 안 됐어."
그 말이 짧았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짧지 않았다. 서윤은 그 말을 듣고 뭔가 말하려다가 멈췄다. 지금 뭔가를 말하면 이 무게를 가볍게 만들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페 안의 음악이 다시 바뀌었다. 사장님이 카운터에서 컵을 닦는 소리가 들렸다. 서윤은 자기 잔이 다 식어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아챘다.
"나는." 서윤이 말했다. "그때 내가 침묵했던 거, 이제는 설명하고 싶어. 제대로. 그냥 겁쟁이였다는 말 말고."
"지금 하면 되잖아."
"지금은." 서윤이 잠깐 멈췄다. "아직 내가 정리가 안 됐어. 그때 내가 정확히 뭘 보고 뭘 못 봤는지. 그걸 정리하고 싶어."
시혁이 서윤을 봤다. 뭔가를 재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차갑게 재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지금 하는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감각으로 확인하는 것 같은 눈빛.
"그래." 시혁이 말했다.
그 한 마디가 거절도 수락도 아니었다. 그냥 들었다는 것. 아직 판단은 보류한다는 것. 서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더 흘렀다. 두 사람은 각자 잔을 쥐고 창밖을 봤다. 언덕길 아래쪽에서 가끔 차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한 번씩 지나갔다.
서윤은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았다. 도서관 기억이 다시 열렸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오해가 아직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닫혀 있던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차이가 작지 않았다.
카페 문이 열리면서 찬 공기가 들어왔다.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서윤은 그 공기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며칠 전에는 언덕을 올라오지 못했다. 그 전날에도. 그러나 오늘은 올라왔다. 이 자리에 앉았다. 이 말을 꺼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다른 날이었다.
시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나 먼저 올라간다."
"응."
"다음에 또 와."
서윤은 그 말이 약속인지 인사인지 잠깐 생각했다. 둘 다인 것 같았다. 시혁의 말에는 작업실 안을 가리키는 어떤 구체적인 날짜도 없었다. 그냥 다음에 또 오라는 말. 서윤은 그것이 오히려 더 진심처럼 들렸다.
"응." 서윤이 대답했다.
시혁이 카페를 나갔다. 서윤은 그가 나간 뒤에도 잠깐 더 앉아 있었다. 식은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따뜻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려놓고 싶지도 않았다.
창밖에서 뭔가가 지붕 위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서윤은 고개를 들어 창문 위쪽을 봤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언가가 거기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서윤은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가방을 들고 일어서면서 카운터 쪽을 봤다.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도 끄덕였다.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서윤은 오늘 꺼낸 말들을 다시 생각했다. 겁쟁이였다는 말. 몰랐다는 말. 제대로 설명하고 싶다는 말. 그 말들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 말들이 공기 중에 나왔다.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였고,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버스 정류장 앞에 서면서 서윤은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다. 그냥 버스를 기다렸다. 언덕 위 카페의 간판 불빛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