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카페 지붕 위 고양이는 하늘하늘

EP.7 해외 브랜드의 유사한 성공 사례가 알려지며 서윤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된다.

오전 내내 자리를 지키던 서윤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등을 의자에 기댔다. 팀장의 메모는 오전 열 시에 왔고, 수정안은 오후 두 시까지 제출했고, 그 뒤로 두 시간 동안 아무도 서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것이 더 이상했다. 기각당했을 때는 적어도 소음이 있었다. 회의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고, 팀장이 뭔가를 말했고, 서윤은 그것을 반박하거나 참거나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정안을 받은 팀장이 메일 확인 표시를 눌렀다는 것만 화면 구석에 뜨고, 그다음은 침묵이었다. 서윤은 컵을 들어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맛이 없었다. 오후가 되자 김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 쪽으로 걸어가다가 서윤의 자리 앞을 지나쳤다. 눈이 잠깐 마주쳤다. 김대리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그냥 지나쳤다. 서윤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 네 시 이십 분, 팀장이 서윤의 자리 앞에 섰다. "채 대리, 잠깐." 회의실이 아니었다. 팀장은 복도 끝 창가 쪽으로 걸어가더니 거기서 멈췄다. 서윤이 뒤를 따랐다. 창밖으로는 건물 사이로 늦가을 하늘이 보였다. 회색과 파란색이 섞인,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색이었다. "수정안 봤어요." 팀장의 목소리는 낮았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드러운 것도 아닌 톤이었다. 서윤은 그 톤이 오전의 메모보다 더 불편했다. "네." "방향은 맞게 잡았는데." 팀장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타이밍이 문제예요. 지금 이 방향으로 가면 설명해야 할 게 너무 많아. 본부장님이 지금 그런 걸 들을 여유가 없어요. 이번 분기 실적이 안 좋아서 위에서 단기 매출 얘기만 나오거든요." 서윤은 잠깐 말을 멈췄다. 방향은 맞다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걸렸다. "방향이 맞다면," 서윤이 말했다. "타이밍은 조율할 수 있지 않을까요." 팀장이 서윤을 봤다. 한 박자 쉬었다가 말했다. "지금은 그냥 접어 두는 게 나아요. 채 대리가 가져온 안이 나쁜 게 아니에요. 근데 지금 이 조직에서 그게 통하려면 더 많은 게 필요해. 데이터도, 선례도, 위에서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순서도. 그게 다 없는 상태에서 혼자 밀면 어떻게 되는지는 채 대리도 알잖아요."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팀장은 그것을 동의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음 분기 다시 검토해 봐요"라고 말하고 복도 안쪽으로 걸어갔다. 서윤은 창가에 혼자 남았다. 창밖의 하늘은 아까보다 조금 더 어두워져 있었다. 다음 분기. 그 말이 서윤의 귀에서 한 번 맴돌다가 사라졌다. 다음 분기에도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고, 같은 말을 들을 것이고, 같은 창가에 서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예감이 아니라 거의 확신이었다. 서윤은 자리로 돌아와 모니터를 켰다. 화면에는 수정안 파일이 열려 있었다. 서윤은 그것을 잠시 보다가, 다른 탭을 열었다. 습관처럼 열어 두는 업계 뉴스 탭이었다. 서윤은 무심하게 스크롤을 내리다가 손을 멈췄다. 기사 제목이었다. '감각의 기억을 담은 향수, 일본 신생 브랜드 Mémoire de Sens 글로벌 시장 돌풍.' 서윤은 제목을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기사를 클릭했다. 기사는 길지 않았다. 일본의 작은 향수 브랜드가 각 제품마다 실제 사람의 기억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담아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는 내용이었다. 제품 하나에 한 사람의 사연이 붙고, 구매자는 그 사연과 함께 향을 받는다. 브랜드 이름도, 패키지 언어도, 유통 방식도 전부 그 철학 하나에서 뻗어 나온 구조였다. 기사 중간쯤에 브랜드 대표의 인터뷰 문장이 짧게 인용돼 있었다. '우리는 향을 팔지 않습니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파는 겁니다.' 서윤은 그 문장에서 눈을 멈췄다. 자기가 수정안에 썼던 표현이 떠올랐다. 제품이 아니라 서사를. 냄새가 아니라 기억을.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조여들었다. 화가 나는 건지, 아니면 다른 감각인지 잘 몰랐다. 자기가 오전에 기각당한 기획안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었다. 향수에 이야기를 담는 것. 사람의 기억에서 출발하는 것. 팀장이 "지금은 그냥 접어 두는 게 나아요"라고 했던 바로 그 방향이었다. 그리고 그게 지금 일본의 작은 브랜드 하나를 글로벌 시장에 올려놓고 있었다. 서윤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손끝으로 책상 모서리를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리듬이 없는 두드림이었다. 틀리지 않았다. 자기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형태로 확인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이 사무실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기사를 팀장에게 보여줘도, 돌아오는 말은 뻔했다. 해외 사례는 해외 사례고, 국내 시장은 다르고, 다음 분기에 다시 검토하자는 말. 퇴근 시간이 됐을 때, 서윤은 가방을 챙기면서 기사 링크를 핸드폰으로 보냈다. 받는 사람 칸에 이름을 넣으면서 잠깐 손이 멈췄다가, 그냥 보냈다. 권시혁이었다. 메시지는 링크만 달랑 보냈다. 아무 말도 붙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답장이 왔다. '읽었어.' 서윤은 그 두 글자를 보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면서 사무실 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쌌다. 서윤은 코트 단추를 잠그면서 하늘을 잠깐 봤다. 구름이 많았다. 언덕 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핸드폰을 다시 봤다. 시혁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더 와 있었다. '올 거야?' 서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답장을 쳤다. '응.' 언덕길은 어젯밤보다 조용했다.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발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서윤은 걸으면서 오후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렸다. 팀장의 낮은 목소리, 창밖의 하늘, 기사 속 문장, 그리고 화면을 보며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자기 자신.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그게 지금 가장 이상한 감각이었다. 카페 앞에 도착했을 때, 문 위에 달린 작은 조명이 켜져 있었다. 지붕 위에 뉨이 있는지 올려다봤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카페 옆 골목길로 꺾었다. 아틀리에 뉨 쪽이었다. 계단을 오르면서 서윤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두 번. 잠깐 뒤에 문이 열렸다. 시혁은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작업 중이었던 모양이었다. 손에 시향지가 한 장 들려 있었고, 눈빛은 이미 무언가를 생각하는 중인 것처럼 보였다. "들어와." 서윤은 안으로 들어갔다. 어젯밤과 같은 공간이었지만 오늘은 빛이 달랐다. 작업 조명이 켜져 있어서 선반 위 유리병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향이 공기 중에 가득했다. 서윤은 그게 무슨 향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코끝에 닿는 순간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기사 봤어?" 서윤이 말했다. "응." 시혁은 작업대 쪽으로 돌아가면서 대답했다. "Mémoire de Sens." "알고 있었어?" "이름은 알았어. 방향이 비슷한 브랜드 있다는 건." 시혁이 시향지를 내려놓으면서 서윤을 봤다. "근데 그쪽이 먼저 치고 나간 건 최근이야. 두 달 전까지는 일본 국내에서만 팔던 거." 서윤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작업대 옆에 있는 낮은 의자였다. 어젯밤에 앉았던 자리였다. "팀장이 오늘 또 말했어. 지금은 접어 두는 게 낫다고." 잠깐 침묵이 흘렀다. 서윤은 무릎 위에 손을 얹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혁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래서 기사 보내온 거야?" 시혁이 물었다. 짧고 직접적인 질문이었다. 서윤은 잠깐 생각했다. "그냥 보고 싶어서." 서윤이 말했다. 그리고 조금 뒤에 덧붙였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겠는데, 그게 지금 아무 쓸모가 없는 것 같아서." 시혁이 서윤을 봤다. 뭔가를 말하려다가 말지 않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대신 작업대 위에 있던 작은 유리병 하나를 집어 서윤 앞에 내밀었다. "맡아봐." 서윤은 병을 받았다. 코르크 마개를 열고 코끝에 가져갔다. 처음에는 뭔지 몰랐다. 그냥 묵직하고 건조한 무언가였다. 그런데 조금 더 가까이 대자 안쪽에서 다른 게 올라왔다. 오래된 종이 냄새 같은 것. 아주 희미하게, 먼지와 나무와 그 사이 어딘가. 서윤의 눈이 조금 달라졌다. "이게." "도서관." 시혁이 말했다. 설명이 아니었다. 그냥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말했다. 서윤은 병을 들고 한 번 더 맡았다. 대학 시절 중앙도서관. 열람실 안쪽 서가 사이. 오래된 책들이 빽빽하게 꽂힌 구역. 그 공기가 지금 이 작은 유리병 안에 있었다. "만들고 있었어?" "아니." 시혁이 작업대에 기대며 말했다. "예전에 만들다 만 거야. 어젯밤에 네가 도서관 얘기 하고 나서 다시 꺼냈어." 서윤은 그 말을 들으면서 병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어젯밤. 자기가 도서관 이야기를 꺼냈고, 그게 시혁을 다시 이 병으로 데려갔다는 것이었다. "완성 못 한 이유가 있어?" "방향을 못 잡았어." 시혁이 잠깐 멈췄다. "향은 나오는데, 이걸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를 몰랐어." 서윤은 병을 다시 봤다. 손 안에서 유리가 차가웠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읽은 기사를 떠올렸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파는 것. 자기 수정안에 썼던 표현과 너무 닮아 있던 그 문장. "이야기가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서윤이 말했다. 크게 말한 게 아니었다. 거의 혼잣말에 가까웠다. 시혁이 서윤을 봤다. 서윤은 병을 손에 쥔 채 계속 말했다. "그 기사에서 그 브랜드가 한 게 그거잖아. 향 하나에 이야기 하나. 사람의 기억에서 시작한 거. 네가 지금 이걸 만들다 막힌 이유가 어디로 데려갈지 몰라서라면, 이야기를 먼저 정하면 되는 거 아니야." 시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이 달라졌다.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서윤은 그 눈빛을 보면서 오늘 오후 내내 가슴 한쪽을 조이고 있던 것이 조금 느슨해지는 걸 느꼈다. 사무실 창가에서 팀장의 말을 들을 때와 기사를 읽을 때와 엘리베이터를 탈 때 내내 어딘가에 쌓여 있던 것이었다. 그게 지금 이 작은 작업실 안에서, 이 병 하나를 손에 쥐고 있는 동안 조금 다른 형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게 사무실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여기서는 달랐다. 여기서는 그 감각이 뭔가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윤은 병을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 그 기사 보고 처음으로 그 생각 했어." 서윤이 말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내가 증명하고 싶다는 거. 조직 안에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시혁은 서윤을 봤다.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이전의 침묵과는 달랐다. 뭔가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그 도서관 향." 시혁이 먼저 말했다. "이야기가 있으면 완성할 수 있어." 서윤은 그 말을 들으면서 시혁을 봤다. 짧은 문장이었는데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많았다. "내일 다시 와." 시혁이 말했다. 질문이 아니었다. 서윤은 잠깐 있다가 일어섰다. "늦었다. 오늘은 이만 갈게." "응." 서윤은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멈췄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 도서관 향. 버리지 마." 시혁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라는 걸 서윤은 알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서윤은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걸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언덕길을 내려가는 동안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서윤은 걸으면서 아까 맡은 향을 다시 떠올렸다. 오래된 종이와 먼지와 나무. 도서관의 공기. 그리고 시혁이 말한 것. 이야기가 있으면 완성할 수 있어. 그 향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서윤은 아직 몰랐다. 하지만 내일 다시 그 계단을 오를 것이라는 것만큼은, 지금 이 순간 아주 분명하게 알았다.